자연계에서의 인간의 위치에 대한 탐구 – 마이클 가자니가, 왜 인간인가?: 인류가 밝혀낸 인간에 대한 모든 착각과 진실, 추수밭, 2009.

I. 들어가며

 

유사 이래 문화권을 막론하고 인간이 즐겨 온 질문이 있다. 그 질문의 내용을 간단하게 요약하면 이렇다.“인간은 유일한가?”인간은 자연계의 다른 모든 동물과 구별되는 독특한 종(種)인가? 아니면 그저 모든 동물 종이 조금씩 다르듯, 딱 그만큼만 여타 동물들과 구별되는 하나의 종일 뿐인가? 이 질문 자체도 무척 인간적인 본성에서 우러나온 질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은 인간을 알아보고,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고, 인간끼리 모여 사는 습성을 가지도록 진화했기 때문에, 인간 자신과 인간 아닌 존재 사이에 뚜렷한 선을 그어 구별하고자 하는 마음의 습관을 불쑥불쑥 드러내곤 한다.

이 책의 저자인 마이클 가자니가는 분리 뇌(split brain) 연구로 널리 알려진 뇌신경학자로, 이 책을 쓰기 오래 전부터 주변 사람들에게“어떤 면에서 인간이 고유하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왔다고 한다. 에필로그를 참고하면, 이 책은 어린이부터 과학자까지 각계 각층의 인사들이 전해온 답변 내용을 모아, 사람들이 잘못 알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잡고, 실마리를 제대로 잡고 있는 부분은 최신 연구 성과로 뒷받침하면서 집필된 것으로 보인다. 이 책에서는 두 가지 방향에서 의외인 내용들을 접할 수 있다. 하나는,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라고 생각되는 것이 의외로 다른 동물들에서도 발견된다는 것. 또 하나는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라고 평소에 생각하지 않던 것들 중 의외로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 많다는 것.

 

II. 도덕

 

인간 아닌 동물에게도‘도덕 관념’이나‘윤리관’이 있는가? 인간 외에도 집단을 이루어 사는 동물은 많이 있다. 대체로 이런 동물들은 집단의 존속을 위해 이타심을 행동 원칙으로 발달시키기 마련이다. 개도, 침팬지도, 코끼리도 자기들끼리 서로 돕는다.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종의 일원이 고통받는 것을 보면 슬퍼하고, 공격받는 것을 보면 화를 낸다. 이들의 이런 행태가 인간이 가진 도덕 관념이나 윤리관과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이타주의는 도덕과 거의 외연이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저자에 따르면 인간이 보이는 도덕적 행태 중 어떤 것은 다른 동물에게서 잘 발견되지 않는다고 한다. 예를 들어‘죄책감’,‘수치심’,‘경멸’과 같은 감정은 아직까지 동물에게 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종류의 감정은 단지 이타심을 가지고 그 원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만으로는 발생하지 않고, 어떤 행동을 사후에 해석하고 평가하는 행위까지 덧붙어야 발생할 수 있는 감정이기 때문인 것으로 생각된다. 요컨대 도덕적 행위는 다른 동물들에게서도 발견되는 흔한 특성이지만, 도덕적 반성은 인간에게서만 발견되는 특성이라고 할 수 있겠다. 또, 인간계에서는 본능적/직관적으로 나타나는 도덕적 행위와, 사후적/해석적으로 나타나는 도덕적 반성 사이에 불일치가 일어날 수도 있으며 이 불일치 때문에 복잡한 도덕적 아이러니들이 발생한다는 점도 흥미로운 부분이다.

 

III. 공감과 감정이입

 

마음이론(Theory of Mind)의 연구 초기에는 많은 학자들이 동물은 마음이론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즉 동물은‘나의 관점과 다른 이의 관점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침팬지가, 감시하는 사람이 있을 때 음식물을 훔치지 않는 것은, 그가 감시자의 관점과 태도를 이해하기 때문에 아니라, 단지‘감시자의 눈이 이쪽 방향을 향하고 있을 때 도둑질을 하면 위험하다’라는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실험 결과가 축적되면서 침팬지가 짐짓‘나는 음식물을 훔칠 생각이 없다’는 인상을 감시자에게 전달하려는 속임수 책략을 쓴다거나, 감시자가 보지 않는 사이에 자리가 옮겨진 음식물에 대해서는 좀더 안심하고 접근한다거나 하는 등의 행동을 보인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었다. 이런 실험 결과들은 침팬지가 감시자(를 비롯한 다른 사람과 유인원들)의 감각 상태, 기억 내용, 태도 등을 헤아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다른 이의 마음을 헤아리고, 그것이‘나와 다르다는’것을 아는 능력은 당연한 일이지만 집단 생활을 하는 동물에게서 주로 나타난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개의 경우 인간과 오랫동안 공존해 왔기 때문인지 인간의 관점과 행동 양식이 개 자신과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개는 감시자가 없어도 창문 근처에서는 음식물을 훔치지 않는데, 그것은 창문을 통해 인간 감시자가 자신을 보고 있는 상황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개는 사람이 사람 자신이 걷는 방향과 다른 방향을 가리켜도 그 지시를 이해하고 가리키는 방향으로 갈 수 있다. 이런 능력은 침팬지나 개의 친척인 늑대에게는 없는 것이다. 개는 오랜 세월 인간과 공존하면서 개과의 친척들에게는 없는 이종(移種)의 심리를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 온 것이다.

 

IV. 예술

 

지금까지의 관찰에 따르면 동물의 세계에 예술이 있는 것 같지는 않고, 동물들이 예술 경험을 포함한 전반적인 미적 경험을 하는가에 대해서는 소상히 알려진 바가 없다. 인간의 예술 활동과 동물의 미적 경험을 흥미있게 비교할만한 부분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다만 인간에게 음악 경험과 (또 한 가지 인간에게 고유한 것이라고 알려진 분야인) 언어 경험이 무척 유사하고 뇌의 같은 영역에서 처리되는 것이라는 연구 결과들은 인상적인 것으로 언급할 만하다. 언어의 정보 전달 방식은 많은 부분이 음악적이다. 어떤 언어에서나 발화는 정확한 강세, 속도, 리듬, 음조를 지키지 않으면 발화자가 의도한 의미를 청자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다. 중국어와 같은 성조 언어는 음조가 변함에 따라 전달하는 의미가 달라지는 것이 확실하지만, 성조 언어가 아닌 경우에도 음조는 의미 해석에 큰 영향을 미친다. 나아가 언어를 처리하는 신경 영역과 가사가 없는 음악을 들을 때 활성화되는 신경 영역이 같은 곳이라는 연구 결과들이 있다. 이 점을 보았을 때, 인간의 언어 능력은 음악 능력으로부터 진화한 것이 아닌가 상상해 볼 수 있을 것 같고, 이 ‘음악 능력’이라는 것은 주변의 다른 개체에게 경고, 우호 등을 전달하는 동물의 울음과 근본적으로 기능이 같은 어떤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다.

 

V. 마무리

 

이 책은 500페이지에 달하는 두터운 볼륨을 지니고 있고, 저자가 뇌신경학자로서의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최대한 활용하여 인간이 자연계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탐구한 대저이다. 이 글에서는 그 중 서평자의 흥미를 끈 극히 일부 주제만을 다루었으나, 책 전체에서는 종교, 판단력, 의식, 감정의 문제 등 인간 본성에 대한 여러 층위의 주요한 문제들을 꼼꼼히 다루고 있다. 자연과학적 관심이건 철학적 관심이건 인간이라는 종의 변별적 특성에 대해 관심이 있는 독서가라면 한 번쯤 차분히 읽어볼 만하다.

 

 

Written by 이의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