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반대한 동성애자, 여기 있다

2018년 5월 29일, 제주대학교에서 작은 소동이 있었다. 그날 4시 즈음에 해양대학 4호관 오션홀에서 도지사 후보들의 정책 간담회가 있었다. 간담회는 ‘제주청년유권자행동’과 <제주의 소리> 신문사가 합작한 것으로 제주도 내 청년들의 정치적 욕구와 필요 정책들을 도지사 후보에게 전달하는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러나 그 의미 있는 자리는 단 세 사람에 의해 아수라장이 되고 만다.

세 사람은 다름 아닌 제주퀴어문화축제 조직위원들이었다. 사무국장인 본인을 포함하여 두 조직위원들이 그 자리에서 ‘질문이 있습니다’를 외치며 손피켓을 들었다. 각각의 손피켓에는 ‘성소수자 반대한다는 원희룡 후보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문대림 후보님’, ‘당신들의 청년에는 성소수자가 있습니까?’, ‘당신들이 반대한 동성애자, 여기 있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이들이 이 같은 행동을 한 데에는 다음과 같은 배경이 있다.

2018년 4월 26일, 지방선거에 들어가기에 앞서 제주퀴어문화축제조직위원회는 예비 도지사후보와 비례대표를 내는 정당, 그리고 예비 교육감 후보들에게 질의서를 돌렸다. 성소수자를 향한 인권적 시각과 더불어 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을 논할 준비가 되었는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5월 18일, 위원회는 간접적으로 답을 듣게 된다. 그날 이루어진 예비후보 토론회에서 고은영 예비후보의 성소수자 관련 질문에 원희룡 예비후보는 ‘그들의 인권은 존중하지만 개인적으로 동성애는 반대한다’는 매우 자가당착적인 답변을, 문대림 후보는 ‘동성애자들의 권리와 인권은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는 문재인 같은 답변을 내놓았다. 사족이지만 문대림후보는 더불어민주당의 후보로서 선거 카피가 ‘문재인 핫라인’이었다. 별게 다 핫라인이어서 성소수자에 대한 인권 감수성까지 핫라인인 모양이다. 이에 제주퀴어문화축제는 관련 사안에 대해 입장문을 발표하였고, 꾸준히 사과를 요구하며 다음 토론회에 kctv 앞에서 피케팅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후보와 원 후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그러던 중 5월 29일 제주대학교에서 축제가 시작됐는데, 그때 같이 분필 퍼포먼스를 하자는 제주대학교 성소수자동아리 퀴여움의 제의가 있었다. 이 제의에 응한 제주퀴어문화제 측은 신나게 퍼포먼스를 하다가 우연히도 간담회가 있다는 사실과 그 간담회에 모든 도지사 후보가 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본선거에 들어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원희룡 후보와 문대림 후보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우리가 아직 있음을 알릴 기회였다.

그래서 우리는 무섭고 떨리는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도화지에 글자를 적어나갔다. 질문하고 답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가 계획한 전부였다. 우리는 폭탄을 지니지도 않았고 칼이나 가위 같은 물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성소수자인 우리도 당신의 청년에 포함되는가.’ ‘우리가 여기에 있으니 말을 함부로 하지 마라’ 이것이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의 전부였다. 그러나 ‘질문이 있다’는 것을 외침과 동시에 기다렸다는 듯이 진행자 측은 우리를 끌어내려 했다. 간담회는 객석의 질문을 받지 않는 형태로 진행되었다. 기존에 준비한 질문이 있고, 그 질문에만 대답하는 매우 닫힌 구조로 진행되었다. 간담회가 있기 전 원희룡 후보가 당한 달걀 테러와, 또한 질문을 받으면 간담회에 임하지 않겠다는 모 후보의 전언이 있었다고 하니 그 때문인 것으로 추측할 뿐이다. 시기가 시기인지라 돌발행동에 예민해진 것은 알겠으나, 진행팀 측에서 과도하게 끌어내기 위한 진압을 한 것이 사실이다. 끌어내면서 ‘다음에 질문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으나, 그 상황에서 다음이 없음은 너무나도 뻔한 일이다. 더구나 성소수자에게 다음이란 늘 우리의 의제를 억압하는 언어이기에 더 저항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나중에’라는 객석의 소리는 없었지만, 마이크를 든 제주여민회2030위원회 소속의 진행자가 ‘다음에 기회가 있을 수도 있으니 기다리라’고 말했다. 우리는 또다시 다음으로 밀렸다는 생각에 더 화가 났다. 그래서 나는 ‘지금 당장’을 외쳤다. 지금 질문할 기회를 주지 않으면 여기서 움직이지 않겠노라는 마음으로. 그러나 당연히도 지금 당장은 없었고, 차마 끌려가긴 싫어서 스스로 걸어 나갔다. 그러나 동료는 끝까지 ‘나를 반대하지 말라’고 외치다 질질 끌려나왔다.

나오자마자 들은 말은 진행을 망쳤으니 사과하라는 강압적인 내용이었다. 너무 화가 났다. 진행을 망친 것은 실존하는 우리가 아니라 우리를 부정한 저들의 언행이었다. 애초에 퀴어문화제의 질의서에 답변을 하거나 5월 18일 토론회에서 모욕적인 말만 하지 않았어도 우리는 그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2030세대의 뜻을 대변하자고 만든 간담회면, 2030세대 성소수자가 여기 있다고 몸부림을 치는데 들어보자고 해야 할 것 아닌가? 그에 앞서, 유권자가 후보자에게 질문하는 행위가 사과할 행위인가? 흥분한 김에 위와 같은 말을 다다다 쏘아붙였더니 ‘여기는 그런 자리가 아니고 니들 행사에서나 해라’라는 답변을 받았다. ‘그런 자리가 아니라니, 간담회 아닌가? 후보와 유권자가 대화하는 자리에서 왜 질문을 받지 않나. 왜 질문할 기회조차 주지 않나’ 하고 쏘아붙이자 상대편은 자리를 피했고, 조직위원들은 모두 격리된 장소로 이동 당했다. 1차 격리된 장소는 복도에 마련된 대기실이었다. 그러다가 ‘후보들의 안전에 위협이 된다’는 이유로 세미나실에 감금당했다.

앞서 이미 밝혔지만 우리는 칼을 들지도, 가위를 들지도, 폭탄이나 총은 더더욱 들지 않았다. 우리에게 무기가 없음은 몸싸움하며 부딪힌 사람들이 더 잘 알지 않을까? 우리가 유일하게 들고 있던 사상전달용 무기인 손피켓도 이미 찢어진 후였다. 우리에게 남은 것은 분노 외엔 정말 아무것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 상황에서 달려가 원희룡 후보의 뺨을 때리려 해도 중간에 진을 치고 있는 형사들과 주최 측 때문에 갈 수도 없는 상황에서, 우리는 세미나실에 감금당했다. 처음 세미나실에 우리를 넣어두고 문을 잠갔을 때 우린 장난삼아 ‘이거 감금 아니야?’라고 했다. 그러다 한 조직위원이 화장실에 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그들은 밖에서 문고리를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명백한 감금이었다. 이에 다른 조직위원이 ‘이 행위는 감금이다. 너희들은 우리를 지켜야 한다. 우리에겐 아무런 무기가 없고, 우리는 더 이상 어떤 행동도 하지 않을 것이다. 화장실에만 가게 해달라’고 요구사항을 전달해 감금에서 풀려났다. 감금에서 풀려나자마자 그들은 우리의 이름과 연락처, 생년월일을 받아갔다.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것이 이유였다. 우리는 후보들이 모두 자리를 이동한 후에야 풀려날 수 있었고, 원희룡과 문대림은 끝내 우리의 질문을 듣지 않았다.

문대림은 너무 우회적으로, 원희룡은 너무 직접적으로 성소수자를 반대했다. 성소수자라고 하지만 정확히는 동성애자를 반대했다고 보는 것이 맞다. 저들이 보수적인 낡은 세대라 반대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세대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을 바라보는 시각의 문제다. 내가 감히 타인의 존재를 반대할 수 있고, 타인의 취향 혹은 지향을 결정지을 수 있다는 오만함이 문제다. 상대방이 인터섹스든 트랜스젠더든 당신들이 ‘무엇으로 살아라’라고 할 자격이 없다. 내가 동성애자든 다성애자든 당신들이 ‘이성애자’라는 스테레오 타입을 정해두고 거기에 맞춰 살라고 억압할 수 없다. 왜냐면 우리는 인간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획일적이지 않다. 머리카락 개수가, 눈동자 색깔이, 피부색이, 손톱의 모양이, 지문이 저마다 다르다. 그렇듯 성애도 정체성도 저마다 다르다. 획일적이지 않고 다양한 것이 인간이 지금까지 생존해온 비결이었다. 모두가 저마다 다르도록, 우리는 그렇게 설계되었다. 호모포비아들이 그렇게 즐겨 찾는 하느님이 획일적인 것을 좋아하셨다면 아담과 그의 클론만 만들어냈을 것이다. 아메바처럼 증식하게 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저마다 다르기에 상징적으로 하와를 창조하신 것 아닐까? 신이 존재한다면 그가 선물한 다양한 성애와 정체성도 존재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신을 외면할 수 없듯이, 존재하는 성소수자 역시 외면할 수 없다. 그러니 원희룡과 문대림은 들어라. 당신들이 반대한 동성애자가 여기 있다. 여기서 매일 살아 숨 쉬고 있다. 일터에서 일하고 번 돈으로 지방세를 내며 당신들의 월급을 충족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말 한 마디를 하기 위해서 제주퀴어문화축제준비위원회는 고초를 겪어야만 했다. 분통이 터지는 시간이었다.

결국 제주청년유권자행동은 그저 ‘유감’임을 전달해왔다. <제주의소리>는 그마저도 전달하지 않았다.

지난 5월 14일 전국에서 ‘지방선거 혐오대응 네트워크’가 결성되었다. 김문수와 원희룡, 문대림 등의 후보자가 성소수자 및 사회적 약자들을 향한 혐오발언을 내뱉는 수준이 극에 달했기 때문이다. 극우와 진보진영은 늘 선거 기간 동안 치열한 공방전을 벌인다. 그러나 그 중심에는 언제나 제도나 문화와 같은 현상이 아닌 사람이 있었다. 장애인이나 여성, 성소수자와 같은 계층에 대한 제도가 아니라 그 자체를 중심에 두고 ‘반대’나 ‘찬성’을 나누고 진보인지 보수인지 구분하는 방식은 굉장한 구태정치다. 존재는 찬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번 지방선거는 다른 때보다 성소수자를 향한 차별발언이 눈에 띄게 많았다. 정의당에서는 전남 광양 시의원 후보가 전환치료시설 설립을 공약으로 내걸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대선에서는 문재인이 페미니스트 정부를 천명하고, 정현백 여성부장관을 임용함으로써 겉으로는 친여성적인 면을 보였다. 그러나 대선 토론회에서부터 차금법까지, 문재인 정부는 공식적으로 성소수자들을 차별하고 이를 중심으로 보수와 진보진영을 나누는 듯한 행태를 보이고 있다. 이를 단적인 면으로 보여준 사례가 이번 지방선거였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반대로 고은영, 신지예 같은 공식적 앨라이처럼 노동당과 녹색당, 정의당에서 퀴어 당사자들이 속속들이 출마한 점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리고 미약하지만 그들의 행보에 표를 던진 수많은 유권자들의 존재도 고무적이다. 혐오로 뒤범벅된 선거 안에서 우리는 작지만 강한 희망을 발견하였다. 이 희망을 단초로 삼아 지역 안에서도 성소수자들이 당당한 유권자로서 우리의 이야기를 지역 정책에 담아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Written by 승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