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냉면 이야기

모처럼 지면을 얻어 냉면 이야기를 해볼까 했더니 비가 내리고 기운이 뚝뚝 떨어지는군요. 네. 겨울입니다. 날도 추운데 무슨 냉면 이야기냐 싶은 분도 계시겠지만 이맘때 찾는 냉면집은 나름의 장점이 있습니다. 예약을 하거나 줄을 서지 않아도 언제나 편한 시간에 가서 먹을 수 있으니까요. 성수기엔 맛이 들쭉날쭉한 집들도 있지만 한겨울엔 그런 일이 드물고, 어쩐지 일하시는 분들도 더 친절하신 것 같고요.

사실 상품으로 자리 잡기 전까지 평양냉면은 겨울 음식이었습니다. 면을 뽑는 메밀의 수확 시기가 10월에서 11월 중이고, 육수를 내는 동치미가 또 한겨울에 익기 때문이지요. 육수의 중요한 방점을 찍어주는 꿩 역시 겨울에 많이 잡히고요. 그러니 본디 냉면이란 것이 백석의 시에서처럼 눈이 많이 온 날 “삿방 쩔쩔 끓는 아루궅”에서 후루룩후루룩 들이키던 별미였던 것이지요.

그랬던 것이 이삼십 년대 경성에서 냉면의 새로운 장이 열립니다. 당시 우후죽순으로 들어서던 대중음식점의 유행을 선도하는 것은 설렁탕집이었습니다만 또한 만만찮은 것이 사시사철 냉면을 판다는 의미의 “면옥”이라는 간판이었던 것입니다. 코가 떨어지게 추운 동네의 별미였던 평안도의 냉면이 어느덧 경성의 유행문물이 됩니다. 당시엔 냉면이 흔한 배달음식이었답니다. 아, 물론 이 시기 아지노모토(MSG의 당시 상품명)의 개발이 냉면의 확산에 큰 영향을 미쳤다지요. (1926년 8월21일자 동아일보, 1935년 7월27일자 동아일보 기사 외 다수 참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는 남하하여 부산경남지방에 밀면이라는 파생종을 남기기도 합니다. 오륙십 년대를 살았던 옛날 어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창경궁을 갔다가 우래옥에서 냉면 한 그릇을 먹는 것이 당시의 서울구경이었다고 하지요. 하지면 냉면의 호황기도 끝은 있었으니, 팔십 년대 경제발전과 함 께 가족외식문화가 발달하면서 냉면 하나만으로는 장사를 버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팔구십년 대엔 냉면의 대장균 파동이 여름철 단골 뉴스가 되었지요. 그렇게 면옥들은 유행의 일선에서 물러납니다.

이후 냉면은 대중적으로는 고깃집 후식이나 분식집 여름 별미 정도로 인식됩니다. 당시 유년기를 보낸 이들이 기억하는 바로 그 맛입니다. 가위로 잘라야 하는 질긴 면발 혹은 머리칼처럼 가는 면발에, 덩어리진 얼음이 떠있는 달고 시고 코끝 찡한 육수의 그 맛이요.

그렇게 세월이 흐르던 어느 순간, 언젠가부터 냉면이라는 이름이 다시 세간에 회자되기 시작했습니다. 아마 덕 높은 이들의 언로가 피씨통신에서 인터넷으로 변화되던 시점과 궤를 같이하는 것 같습니다. 이름 붙이기 좋아하는 호사가들이 사대문 안 몇 대 냉면 등등을 꼽기 시작했고, 다른 것은 몰라도 진정성만은 넘치는 이들은 계보도를 그려가며 어느 집은 정통이요, 어느 집은 사파니 하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어쩌다 그렇게 되었는지, 냉면은 어느새 맛에 대해 키보드 좀 쳐봤다 하는 이들에게 있어 일종의 관문 같은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인구에 회자되다 보니 자연스레 방송을 타게 됩니다. 요 몇 년 간을 보면 여름이 다가오면 방송과 잡지엔 유명 냉면집들의 간판이 쉴 새 없이 오르내립니다. 그러다보니 한여름 유명 냉면집들 앞에는 식사시간에 맞춰 긴 줄이 늘어서는 일이 흔합니다.

이 정도 유명세면 엇비슷한 후발주자가 막 들어서고 프랜차이즈가 여기저기 들어서는 게 한국 요식업계의 공식 같기도 한데 면옥들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어디 괜찮은 냉면집이 새로 생겼더라 해서 가만 보면 기존의 유명 냉면집의 자식들이 독립해서 가게를 낸 경우가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냉면을 제대로 만들기가 힘들어서 그렇습니다.

옛날 평안도에서 먹었다던 냉면을 복기해보면, 메밀로 뽑은 면에 동치미와 꿩 육수입니다. 이게 사실 그냥 구하기 쉬운 재료들의 조합입니다. 밀 농사가 안 되는 땅에 쌀은 귀하고, 평안도부터 제주도까지 지천이었던 게 메밀이었고, 국수는 먹고 싶고, 그래서 나온 것이 메밀면입니다. 거기에 그냥 집에 있는 동치미 국물 말아서 먹은 것입니다. 아이들이나 삼촌이 뒷산 가서 꿩 한 마 리 잡아오면 국물도 우리고 고명도 좀 올리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메밀이 귀합니다. 국산 메밀 농가가 많지 않아서 가격이 비쌉니다. 재료 원가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또한 메밀로 반죽을 뽑고 면을 뽑는 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메밀은 글루텐 함량이 낮아서 반죽이 잘 안됩니다. 요즘에야 기계를 쓴다 쳐도 예전엔 냉면집에서 면을 뽑자면 장정이 필요했답니다.

게다가 동치미도 문제입니다. 삼팔선 이남에서 담근 동치미는 그 맛이 나지 않는다 합니다. 기온이 문제입니다. 더군다나 냉면이 여름 음식으로 자리 잡으면서 철 아닌 동치미를 만들어야 했고, 이게 맛도 나지 않지만 탈도 많았습니다. 위에 팔구십 년대에 대장균 파동을 언급했었지요. 꿩은 더 말할 것도 없고요.

원래 고향집에서 먹던, 동네마다 약간 다른 조리법에 달라진 시대와 환경에 맞추기 위해 조금씩 변화를 가미하고, 세대가 한 번 두 번 대물림대면서 각각 나름의 맛과 형식으로 정착한 것이 지금의 노포, 오래된 면옥집들입니다. 그러다보니 조리법을 표준화하기도 어렵고, 몇 개월 교육으로 기술을 전수하기도 쉽지가 않은 것입니다.

거기에 더해, 냉면집들이 단골 장사의 비중이 큰데, 이 단골들이 또 녹록치 않습니다. 할아버 지, 아버지 손잡고 냉면집 드나들기 시작한 이들도, 한 손에 키보드 한 손에 디카를 들고 맛의 세계에 입문한 이들도 다들 예민하기 그지없습니다. 분창(면 뽑는 틀)만 갈아도 고개를 갸웃거리고, 어쩌다 육수가 흔들린 날은 바로 혀를 찹니다. 조금 짓궂게 쓰기는 했지만 이 마니아층이 평양냉면의 현재를 만든 한 축임에는 분명합니다.

그래서 그런가, 평양냉면은 의견교류가 활발한 음식입니다. 면에서 메밀의 함량은 어때야 하는가. 육수 는 소, 돼지, 닭, 어떻게 뽑는가. 동치미와 MSG의 사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신흥 강자의 발호와 전통의 명가의 쇠퇴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평뽕 한 사발”하고 SNS에 올리는 냉면 사진과 함께 논쟁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입니다.

평양냉면은 이래야 한다, 하는 어떤 냉면의 이데아가 그들의 마음속에 존재합니다. 면발은 메밀의 함량을 최대한 높이되, 육수 안에서 힘없이 풀어지지 않으며 씹었을 때 부드럽게 툭 끊어지며 메밀향이 돌아야 합니다. 사발째 육수를 한 입 들이키면 차갑고 밍밍할 정도로 심심한 첫맛이 어느새 고기의 감칠맛으로 변해 입안에 맴돕니다. 이럴 때 “슴슴하고 쨍하다”라는 표준어사전에는 실려 있지 않은 표현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맛이 상상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그것은 실향민의 유전자일 수도 있고, 숙취 끝에 찾은 해갈의 기쁨일 수도 있고, 단순 끼니가 아닌 문화로서의 변화발전에 대한 가능성일 수도 있습니다. 거창하게 말했지만 종합하자면 “진짜 맛있는 냉면”에 대한 추구입니다. 그러다 보니 냉면에 대해 얘기하는 사람들 모두가 궁금해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본토의 맛입니다.

의정부파니 우래옥파니 답 안 나오는 논쟁을 하는 사람들도 평양의 냉면 얘기가 나오면 관심을 기울일 것입니다. 그곳에 변형되지 않은, 원본의 맛이 존재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 너머에 분명 존재하기는 하는데 좀처럼 접하기가 어려운 대상이 갖는 신비감이랄까요. 그래서 저도 북경이나 네팔의 옥류관 분점에서 냉면을 먹어본 사람들의 증언에 귀를 쫑긋 기울였고, 때론 실망스런 반응에도 평양의 본점은 그렇지 않을 것이야 하며 기대감을 사그라트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요 몇 달 사이에 접한 기 록들을 보면 생각을 바꿔야 할 것 같습니다. 평양 옥류관 출신의 요리사 윤종철 씨의 인터뷰(SBS<강헌 황교익의 맛있는 라디오> 9월26일 방송분)라던가, 최근 금강산에서 있었던 이산가족상봉 행사에서 일정에도 없는 옥류관 외금강분점에 수차례 방문하여 꿋꿋하게 냉면 한 그릇을 사먹고 돌아오신 분의 기록(딴지라디오<걸신이라 불러다오 방송별 게시판-외금강 호텔 옥류관 분점 시식기>)을 교차해서 봤을 때, 전분과 메밀을 7대 3의 비율로 써서 마치 밀면을 먹는 듯한 식감의 면발과, 조선간장과 맛내기(MSG)로 맛을 잡은 육수가 공통적으로 보였습니다. 면발에 식초를 직접 발라먹으라는 김일성 교시야 뭐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더라도요. 면에 메밀의 순도를 높이고, 육수에 MSG를 쓰지 않는(혹은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는) 서울의 냉면과 전혀 다른 방향이지요. 평양의 냉면 역시 그곳의 달라진 시대와 환경에 맞춰 변화하고 적응한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식문화란 것이 어디 박제되어 보존될 수 있는 그런 것은 아니겠지요. 서울의 냉면 한 그릇만 해도 그래요. 방식도 맛도 알게 모르게 조금씩 달라져왔으니까요. 말 그대로 먹고 사는 일 아니겠습니까.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사는가 하는 것과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변하는, 그런 살아있는 것이겠습니다. 다만 그 변화의 방향이 어느 쪽을 향하는가, 하는 것을 우리는 사후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것뿐인지도 모르겠어요.

저는 서울의 냉면에 대해 그렇게 생각합니다. 긴 시간 이런저런 위기도 있었고요, 외식 시장의 소비는 양적으로 늘었지만 질적으로도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우니까요. 우리의 식문화라는 게 단단한 기반이 없어서 마케팅에 쉽게 휘둘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지금의 냉면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생산자의 자부심과 자존심 어린 노력, 소비자의 비판과 지지가 어우러진 나쁘지 않은 결과물이라고요. 숫자는 적어도 괜찮은 신흥 강자도 등장하고 있고요. 요즘 같은 세상에 이게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아요.

 

 

Written by 김태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