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안에서 보낸 한 철

저는 몇몇 대학교에 인문계열 강사로 출강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세계적인 판데믹 사태였던 COVID-19 상황에 치러진 지난 2020년 1학기 강의에 대한 강사 입장에서의 간략한 회고입니다. 흥미진진한 글이기보다는 작은 규모의 백서 쯤이 될 듯합니다.

 

대학의 문제들

대학은 (일반적으로, 한국 사회의 평균적인 속도에 비해서는) 긴급 상황에 대한 대응이 늦는 편입니다. 겨울방학부터 COVID-19 사태가 발발, 진행되면서 각급 대학들은 나름의 대응을 해 왔습니다. 대체로 개강 연기 → 부분 온라인강의 → 온라인강의 + 오프라인 시험 → 전면 온라인강의 순으로 대응의 수준을 높여 왔습니다만, 지난 뒤에 생각해 보니 이들 결정이 조금 빨랐다면 여러 가지 불편과 폐단이 좀 줄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COVID-19는 모두가 처음 경험하는 사태이고 이것이 이렇게 길어질 줄 아무도 몰랐으니 참작의 여지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온라인 강의가 시행된다는 것이 고작 1~2주 전에 결정, 통보되다보니 기숙사 등록이나 자취 계약을 이미 한 학생들이 불편을 겪었습니다.

대학 본부와 그 부속시설간에 입장이 맞지 않아 생긴 문제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 본부는 전면 온라인 강의를 결정하였는데, 부속시설인 기숙사에서는 기숙사에 등록한 학생들의 등록 취소 및 환불을 전혀 진행해 주지 않은 경우가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많은 불편이 초래되었습니다.

등록금 (일부) 반환 문제는 접근하기 까다로운 듯합니다. 등록금 반환을 요구하는 학생들의 입장과 등록금 반환을 꺼리는 학교의 입장이 서로 나름대로 일리가 있습니다. 학생들은 오프라인 강의로 진행되었던 정규 학기보다 교육 서비스의 질이 무척 나빴으며(아래 ‘교수의 문제들’ 참조), 등록금은 교육 서비스의 대가로 지불하는 것이니만큼 이렇게 낮은 수준으로 운영된 학기에 전액을 지불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대학측에서는 온라인 강의로 운영된다고 하여 대학 운영 경비가 크게 절약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온라인 강의가 진행되어도 직원들은 계속 사무실에 출근하고, 학사 일정은 똑같이 진행됩니다. 강의실 냉방, 조명 비용 정도 말고는 크게 절약되는 바가 없다고 합니다) 예산 계획 내에서 환불을 수행하길 곤란해하는 입장입니다.

 

교수의 문제들

2020년 1학기에 파행적으로 진행된 수업의 악명은 다 열거하기도 어려울 지경입니다. 가장 널리 알려지고 흔히 나타난 파행 사례는 과거에 찍어놓은 강의의 재탕입니다. 교수자 자신이 촬영한 외부 특강 영상을 게시판에 업로드하고, 수강생들이 그 영상을 관람하는 것으로 강의를 대신하는 것이죠. 교수에 따라서는 이 영상이 10년 전, 15년 전 것일 때도 있고, 강의 제목과 관계없는 내용의 영상일 때도 있어서, 대학 수업에서 이런 수준의 강의를 듣는 것이 말이 되는가 하고 많은 학생들이 분통을 터뜨렸습니다.

또 이런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하나의 과목이 5개의 클래스로 분반되어, 5명의 교수가 각각 한 클래스를 맡아 강의를 하는데, 모든 강의 게시판에 동일한 (한 사람의 교수의) 강의 영상이 올라온 일입니다. 나머지 4명의 교수는 한 학기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심하게는 아예 교수가 잠적(!)한 채 수강생들에게 아무 연락도 없다가, 학기말(제14주차쯤) 무렵에 나타나 기말고사 시행을 공지한 경우도 있었다고 합니다.

엄밀히 말해 ‘파행’이 아니었던 수업들도, 썩 만족스럽지 못하게 교육이 진행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위한 테크놀로지에 익숙하지 못한 교수자들은 대개 매주 과제 부여로 강의를 대신했는데, 이 때문에 수강생 과제 부담이 엄청나게 올라갔습니다. 육성 강의에 비해 지식 습득 효율이 떨어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가장 표준적으로 학교의 방침을 따랐다고 할 수 있는 실시간 화상 강의마저도 오프라인 강의에 비해 집중력 저하, 강의 내용 전달 불편(칠판 판서에 익숙한 교수자들이 적응하기 어려운 문제) 등의 한계가 있습니다.

각종 설문 결과에 따르면 학생들이 가장 선호하는 강의 방식은 ‘강의 동영상 촬영 후 업로드’라고 합니다.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속도로 학습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학생들에게 익숙할 ‘인강’과 포맷이 비슷한 강의 방식이라는 점도 한 이유겠지요. 그에 비해 실시간 화상 강의는 정해진 시간에 접속해야 하고, 한 번 강의를 놓치면 학습 내용을 복습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반면 제 경우, 교수자 입장에서 실시간 화상 강의가 제일 좋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강의 촬영 후 업로드는 편집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질의응답 및 피드백이 어렵기 때문입니다. 2020년 1학기에 저는 이 두 입장을 절충하여 ‘실시간 강의와 동시에 강의 영상을 녹화하여 강의 직후 공유’라는 방법을 택하였습니다.

 

학생의 문제들

한 대학에서 700명이 온라인 시험 부정행위에 가담했다는 기사가 언론에 보도된 바 있습니다. 현재의 기술로는, 전통적인 형태의 서면 시험이라면 온라인 환경에서 부정행위를 막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부정행위를 막기 위해 시간제한이 있는 단답형 시험을 도입한 강좌도 있습니다. 오픈 북 시험으로 치르거나, 서면 시험 없이 과제물 부여만 하기도 합니다. 현실적으로 대학 환경에서 전통적인 형태의 서면 시험이 가장 논란/클레임이 적은 평가 방식이기 때문에, 학교 당국에서는 이 방식을 오랫동안 선호해 왔습니다만, COVID-19 시국에서는 유지되기 어려울 듯합니다.

 

학교의 문제들2: 2학기는 어떻게?

대학들은 COVID-19 사태의 2학기를 맞아 초조해진 듯합니다. COVID-19 사태가 진정되었다고 할 수 없는 시점(8월 상순)에 이미 2학기 강의는 대면 강의로 진행한다고 정해 둔 학교들이 많았습니다. 이는 강의 질에 대해 쏟아진 민원에 대한 나름의 응수인 듯합니다. 어찌되었건 오프라인 강의를 하지 않으면 2학기에도 등록금 반환 요구에 시달릴 것이라고 내다본 결과이겠지요.

어떻게든 오프라인 강의를 해야 한다는 초조함에 많은 학교들이 채택한 강의 방식이 ‘순환출석’이었습니다. (명칭은 학교마다 다릅니다) 이것은 한 클래스의 수강생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번갈아가며 절반은 오프라인 출석을 하고, 나머지 절반은 자택에서 영상으로 강의를 보는 (이를 위해 강의실에 생방송 촬영 장비를 설치합니다) 제도입니다.

순환출석은 그 자체로 크게 문제가 많습니다. 첫째, 방역 면에서 크게 안심이 되는 제도가 아닙니다. 학기의 절반만 출석한다지만, 수강생 한 명은 한 학기에 5개 이상의 강좌를 듣는 편이므로, 순환출석 조 편성에 따라 결국 매일 출석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강의실에서만 거리를 두고 앉을 수 있을 뿐 교내 편의시설에서는 여러 학생이 결국 부대끼게 되겠지요. 둘째, 수강 과목의 일부는 오프라인에서 수강하고, 일부는 온라인 수강을 하게 되면, 이동 시간과 강의 시간이 겹쳐 제대로 강의를 듣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셋째, 오프라인 강의에서 최적인 강의 스타일과 온라인 강의에서 최적인 강의 스타일은 다르기 때문에, 교수자 입장에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중 한 쪽이 결정되어 있는 상태에서 강의를 계획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순환출석 방식에서는 오프라인과 온라인 어느 쪽으로도 최적화되지 못한 강의를 제공하게 됩니다.

결국 8월 말에 서울에서 COVID-19 확진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각 대학의 순환출석 구상은 취소되고 전면 온라인 강의로 전환되었습니다.

 

2학기는 어떻게 될까요?

8월 말의 COVID-19 재확산 때문에 대학들은 다시 전면 온라인 강의를 선언했습니다. 한 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하고 싶지 않은 사정들 때문에, 지금 각 대학들은 한 주 또는 두 주 동안만 온라인 강의를 하는 것으로 공지해 둔 상태로, 그 다음부터는 상황을 보아 다시 대면 강의를 개시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8월말 현재 서울에서의 재확산세가 매우 거세어, 1학기의 경험에 비추어 추측컨대 2학기도 종강까지 전면 온라인 강의로 진행될 듯합니다.

 

COVID-19 환경에서 보낸 한 학기를 대학 강사로서 제가 경험한 것과 주변에서 들은 범위 안에서 적어 보았습니다. 아무쪼록 이 사태가 속히 안정되기를 바라며 읽어주신 여러분도 보건 안전 유지하시면서 모두 건강하시길 바라겠습니다.

 

 

Written by 아무개